2012/02/22 01:47

뒤늦은 11월소년 녹음 현장 일해라 일

<인트로>

예일 나레이션 : 여러분 안녕하세요! 영어 못하는 영어선생님, 박예일입니다.
(나직하게) 뭐? 푸름이가 방에서 쌀을 축내면서 잉여짓이나 하고 있다고?
농부들이 피땀흘려 키운 쌀을 낭비하는 꼴, 두고볼 수 없지.
선생님으로서 학생의 건실한 학창시절과 빛나는 미래를 위해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이푸름, 기다려라~~

푸름 나레이션 : 내 이름은 이푸름. 대한민국의 평범한 고등학생...
이었지만,
(매우 상심하여) 지금은 한낱 똥 싸는 기계가 되어 하루하루 쌀을 축내는 잉여일 뿐이다. 내 인생 언제부터 이렇게 됐더라.
(잠시 침묵) 생각하기도 귀찮다. (짜증섞인) 규연이 형은 어딜 간 거야, 밥도 안 하고...
혀엉 나 배고파~
(절규) 밥 줘...!!!!!




이딴 미친 대본을 쓰고 성우분들께 감히 녹음을 종용했던 11월소년.
저는 11월소년을 만들고 갖가지 업보를 축적해 가는 것 같아요. 후생엔 파리로 태어날 것이다.

많이 지났지만... 대본과 녹음이 끝나고 편집만 남아 홀가분한 상태로 뒤늦게 쓰는 녹음 후기. 블로그에 쓰려니 재미가 없고 기억이 휘발되는 건 좀 아까워서 요기다 후기를 씁니다.



(사진은 녹음날 생일이셨던 정현이의 성우분께 축하드리며 간소한 생일파티)


두희님이 생일이셨고 케익은 머찐 선배 재헌님이 사오셨고용~
저희도 미리 알고 컵케익을 사갔는데 마침 먹을 게 많아서 포장을 뜯진 않았어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안에서 쓰러지고 난리였다ㅠㅠ 이쁘게 드려야 했는데... 죄송해라.

그리고 또 이 날 수고하실 성우분들을 위해 멋진 팬분들이 식혜와 떡, 갖가지 먹거리를 준비해주셨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성우분들 쉬는 시간에 담소나누며 맛있게 드셨고 생일상도 풍족해보여 훈훈한 느낌. 식혜가 차갑게 얼어서 도착해 먹기 딱 좋았어요. 성우분들과 피디님 먼저 드리고 저도 남은 식혜 조금 맛보았습니다-///- 제가 태어나서 먹은 식혜 중에 제일 맛있었어요. 진짜로~!!

그럼 녹음날 했던 메모를 더듬으며 후기글.
을 시작하기에 앞서 잠시 잠깐 반성의 시간ㅠㅠ

글 쓰는 일은 정규직도 아니고,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죠. 때문에 아마추어 리그에서 슬그머니 올라와 작업하고 있는 현실은 생각보다 괴로워요. 아니다, 엄청나게 행복하진 않아요.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는데 이건 그냥 제가 자존감이 낮아서 그래요. 전 언제나 제 작업물에서 부족한 점을 느끼고 있는데다가 남들이 저를 '작가'님이라고 부르거나, 제 글을 '작품' 이라고 불러주실 때 마다 죄책감이 듭니다. 그렇잖아요. 여기는 무엇보다도 취향이 평가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 곳이고, 거기에 모든 사람이 만족하는 정답이란 건 없어요. 결과가 수치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저는 항상 제가 잘 하고 있는지 확신을 가질 수가 없더라구요.

그렇다고 언젠가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나서 제가 어느 정도 편해지는 시기가 올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아요. 제 작업물에 만족하면서 '이 정도면 됐지.' 혹은 '이번 건 내가 생각해도 너무 잘 썼다!'고 생각하는 날이 만약 온다면, 전 미래의 제 자신을 혐오하게 될 거예요. 자학은 천성인지도 모르겠어요. 글이 취미가 아니라서 그런지도 모르겠고요. 만약 그렇게 타협하고 만다면 오만한 제 스스로가 역겨워질 것 같아요.

그런데 이런 때에 같이 작업하게 되는 PD님이나 성우분들은 프로분들이시고 언제나 최고의 결과물을 주세요. 제가 하는 일은 그저 녹음날 뒤에서 제가 쓴 대본을 한 줄 한 줄 읽어나가시는 성우분들을 보면서 몸을 꼬는 것 밖에 없습니다...ㅠㅠ 그 기분을 뭐라 설명해야 하지, 어쨌거나 전 뻔뻔해질 수가 없어요.

아... 이 날 녹음 때도 정극 시작하는데 첫 나레이션부터 제가 온 몸과 손발을 꼬고 있으니 일찍 오신 승화님(예일쌤 성우분)이 옆에 계시다 오해를... 하시고...
남자 둘이 흐뭇하게 BL 풍 연기를 하니...
제가 좋아서 그러는 건가..... 오해하신 것 같은데...........
그것이 아니라 ㅠㅠ...................... 저능...
그 상황에 약간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런 것이었습니다...

여턴 이번 드라마CD는 1CD과 2CD가 정극과 코믹으로 온도차가 완전 심해요. 나중에 들으시고 '뭐야~ 고작 이런 거 쓰면서 이렇게 고민했어!?' 하시고 절 구박하심 차라리 홀가분할 거 같아요. 저는 원래 그 정도밖에 안 되고, 하지만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걸 쓰면서도 굉장히 노력했으니까요. 그러면 세상의 다른 많은 작가들이 얼마나 훌륭한지에 대한 반증이 되지 않을까요! 그러니 마음이 편할 거 같다는 이야기ㅎㅎ



이쯤해서 저의 구질구질한 마음가짐은 집어치고... 성우분들은 언제나 즐겁게 녹음해주셔서 당일엔 분위기가 너무 좋았어요. 저희 팀원들도 이번엔 녹음에 참관을 했는데 대인원이 와글와글하니 복잡시러웠을 것 같지만, 훌륭히 녹음을 마쳐주신 성우분들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ㅋㅋㅋ

몇 가지 기억나는 일화 말씀 드리자면, 예일쌤 성우분 승화님은 대본에 나타나지 않는 11월소년의 설정과 게임 속 예일이의 성격을 듣기 위해 일찍 오셨다는 거! 프로 정신에 감탄했습니다. 그리고 정현이의 성우분이셨던 두희님은 저희가 끝까지 숨기고 싶었던 정현이의 정체성... (ㄱㅈ)...를 일찌감치 알아채셨고요. 덕분에 코믹 씨디에서 관련 애드립이 막 터졌는데 쉬는 시간에 저희가 참으로 죄송스런 얼굴로 다가가 '죄송합니다... 그런 역을 드려서' 했드니 너무 개구지게 웃으시더라고요. 저희 맘 속 죄책감의 응어리가 살짝 사라질... 리가 없고 더욱 죄송해졌어요.

또 규준님 (중기, 금영이 성우분) 부스에 들어가시기 전에, 초반 NG 보면서 저희가 너무 좋아하니까 나도 뭔가 해야겠다! 하면서 들어가셨답니다. 그리고 계속되는 넘치는 애드립, 의도된 실수들ㅋㅋ 아니 저희같은 일개 새우젓에게 그렇게 신경을 써주시다니... 다정하셨쎄요 ㅠㅠ

그리고 또 규준님께 감탄한 부분인데 더블 캐스팅이라 캐릭터마다 확연히 다른 목소리를 내주시는 거였어요.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건가 싶지만? 실제로 들으니 중기와 금영이는 정말 차이가 크더라고요. 금영이 등장할 때 목소리 스마트해서 좋았습니다. 너무 멋있었습니다♡

음... 또 뒤에 이어진 코믹 버전 대본에선 모 캐릭터와 용우님의 목적이 전도된(ㅋㅋ) 애정♡씬이 있었는데요. 여기서 상대에게 뽀뽀하는 소리 한 번만 내달라고 부탁한 PD님께, 용우님이 마음 속에서 우러나는 소리로 '싫어!!!!' 라고 외치신 것도 기억에 남았습니다ㅋㅋ 결국 프로답게 해주셨는데 전 싫어하시는 버전이 마음에 들더라구요(??)
'싫어!!!!' 라고 소리치신 것도 너무 좋았다(??)
이럴수가 내 취향..????

앗 그리고 솔이 성우를 맡아주신 정화님 씬이 나오면 저랑 피로는 넋을 잃고 '귀여워...' 라고 중얼거렸어요. 저희가 귀여워하면 안 될 것 같지만 (죄송합니다ㅠㅠ) 목소리로 들을 땐 정말 참을 수가 없었어요. 솔이한테 XX하고 XX하다니 ㅠㅠ 이푸름이는 나쁜 자식이야 ㅠㅠㅠㅠㅠㅠㅠㅠ 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니깐요.
덕분에 솔이가 등장하면 피로는 나직하게 껌 씹는 발음으로 '이푸름 나쁜 새기... 저새긴 나쁜 새기예요' 라고...
듣는 난 쫄았다....



앗 또 생각나는 거!

게임 원작 플레이 하신 분들은 알고 계시겠지만, 이번 정극에 나오는 체념 루트는 푸름이와 진범이 서로의 목숨을 위협하며 서로 죽일 듯, 죽이지 않을 듯 아슬아슬한 감정선이 계속 이어져요. 녹음실 안에서도 배역에 몰입한 성우분들이 애틋하게 감정 연기를 하고 계셨는데요.

푸름 : 왜 날 살려뒀어! 차라리 날 먼저 죽이지... 왜, 왜 나를!

이 대사가 나오자마자 녹음실 바깥에 앉아계시던 두희님이 나직하게 하신 말

'사랑하니까...?'

듣는 저희 잠시 경악!
두희님... 누가 두희님을 이렇게 만들었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흐흐...

그리고 정극 녹음이 모두 끝난 뒤에 용우님은 제게 오셔서 'XX(진범 이름) 걔 그냥 제가 죽여버림 안 돼요? 왜 살려요? 죽여버려요~~' 라고 말씀하셨어용.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으어엌ㅋㅋㅋㅋ
음... 네. 많이 답답하셨군요.
이것 역시 또 죄송합니다. 이런 역을 드려서... 흑흡

그 외에도 몇 개 있지만 스포의 범위인 것 같아서!

앗차, 수진님은 언제나 팬서비스 (b-_-)b 저희가 성우분들 사용하셨던 대본 이벤트로 사용한다고 하니까 굉장히 많이 만지작거려 주셨고 (괜히 커피를 쏟거나 약간 구깃거리시거나ㅋㅋ), 용욱님은 갑자기 대본에 급하게 밑줄을 그으시던데요ㅋㅋㅋㅋ
Aㅏ... 이런 거 얘기해도 되나
뭔가 새하얗게 빳빳해도 '역시 프로는 대단해!' 싶은 느낌인데, 아마도 팬 분들께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으셨나봐요~

그랬습니다~!
후기는 여기서 대략 끝ㅎ

그럼 출고일까지 무사히 이변없이, 잘 준비되어 나오기를!
언제나 애정과 관심주시는 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번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면 다른 글로 또 찾아뵐 수 있기를...히히



+)문제되는 부분 있음 말씀해주세요. 소심하게 수정함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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